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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힘

요즘 사는 맛/ 12명의 작가들의 일상 속 음식이야기

by 롱이 2022.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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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는 맛/ 12명의 작가들의 일상 속 음식 이야기

 

 

 

 

"밥 잘 챙겨 먹니"로 시작해 "밥 좀 잘 챙겨 먹어라"로 끝나는 수미상관의 대화. "잘 먹고 지내요." 수없이 반복하는 대답이지만 부모님은 그제야 한시름 놓으십니다. 잘 살고 있다는 말로 닿는 모양입니다. 사실 이상할 건 없습니다. 살면서 마주하는 숱한 대화들이 "밥 먹었어?"로 시작해 "밥 한번 먹자"로 끝나니까요. 우리는 밥 먹었는지 물으며 그 사람을 향한 관심과 애정을 넌지시 드러냅니다. 밥 한번 먹자는 인사로 우리 사이가 열린 결말로 계속될 거라 암시합니다. 어쩌면 밥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바빠서 대충 때우는 한 끼가 있는 반면 산다는 건 결국 이런 순간을 위함이 아닐까 싶은 가슴 벅찬 한 그릇도 있고요. 이토록 다양한 의미를 띤 일상이 하루 두어 번씩 우리 삶으로 성실하게 날아듭니다. 그 속에서 맛있다는 감탄이, 함께 나눠 먹는 행복이, 또렷한 취향이 삶의 이야기로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접시 안에는 행복이 있지_ 김겨울

 

나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은 날에는 브리 치즈나 카망베르 치즈를 사다가 6등분해서 마른 팬에 살짝 굽는다. 치즈가 살짝 녹으면 접시에 옮겨 담고 그 위에 견과류를 얹고 꿀을 뿌린다. 먹는다. 감탄한다. 와인을 딴다. 천국! 애용하는 치즈 사이트에서 알게 된 방법인데 몇 년째 우울한 날의 특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절을 함께 통과하는 맛_ 김현민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요리를 즐기는 유형과 차라리 설거지를 택하는 유형. 난 명백한 후자다. 믿을 수 없겠지만, 설거지를 좋아하기까지 한다. 요리보다 설거지가 나은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만든 요리가 식탁에 오를 때의 긴장감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이 먹는 사람 입에 맞으면 다행이지만, 보통 해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 억지로 리액션을 쥐어짜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작위적인 식탁 리액션만큼 보는 쪽이나 하는 쪽 모두에게 곤혹스러운 것도 없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내 주위에는 가짜 리액션이 필요 없을 만큼 요리를 즐기는 데다 손맛까지 좋은 친구가 여럿 있다. 그들에게 밥을 얻어먹는 시간은 내 삶의 가장 충만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신나게 설거지를 시작했다. 주영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기억해줘서인지,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바줘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몸도 마음도 충만한 기분이었다. 기름진 접시가 뽀드득 소리를 낼 무렵에는 나의 지론이 더욱 선명해졌다. 남이 해준 밥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밥 한 술에 행복, 또 한 술에 극락_박정민

 

오후에 만날 감독님께서 이제 슬슬 살을 빼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시겠지만 그 잔소리를 버티려면 정신력이 필요하고 정신력은 체력에서 나오므로 내일 아침은 더욱 든든히 먹어야 한다. 오전중에 먹은 스팸 마리는 분명 오후 중으로 다 소비될 것이다. 정말이지 수면욕과 게으름 때문에 놓쳐버린 과거의 그 모든 아침밥들이 아쉽다.

 

이제는 쇠꼬챙이 같은 몸으로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어느 날, 헬스장에 찾아가 PT를 끊었다. 선생님은 내게 우선 살을 찌워야 한다며 탄단지가 고루 분포된 식사를 거르지 말고 챙겨 먹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탄단지가 고루 분포된 햄버거를 하루에 세 번씩 먹기 시작했다. 그 사이사이 탄단지가 고루 분포된 불고기 피자와 순수 단백질로 이루어진 순살 치킨도 먹었다. 급격하게 살이 찌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뭘 드셨기에 이렇게 배가 나왔냐고 했다. 탄단지 위주로 햄버거를 먹었다고 했더니, 질색을 하며 그건 안 된다고 했다. 난 햄버거를 먹지 말란 소리는 없었지 않았냐며 따져 물었고, 선생님은 내가 쥐고 있는 바벨에 원판을 하나씩 더 끼워 넣었다. 원판이 마치 햄버거처럼 보였다. 

 

 

 

 

'나'라는 손님을 대접하는 중입니다_김진아

 

의외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를테면 작업실에 원두가 다 떨어졌을 때 서랍에서 찾은 드립백 커피 한 봉지, 친구에게 받았던 작은 운, 무척 다정한 복, 운이 좋다기보다 기쁨을 발견하려고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행복은 웬만해서 먼저 노크를 하지 않는다. 내 손으로 문을 열고 나서야 겨우 만나지는게 바로 행복이다. 말 그대로 다행스러운 복. 별거 아닐지라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을 슬며시 감고 안도하는 마음이다.

 

 

 

 

맛은 늘 가까이에 있어_핫펠트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누가 만든 노랜지는 모르지만, 뼛속부터 공감한다. 평생 김치만 먹고 살라고 하면 못 먹겠지만, 가능한 오래, 죽을 때까지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담근 김치를.

 

오늘 이유 없이 꿀꿀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나처럼 고기 앞으로 가는 걸 추천한다. 다이어트 중이 아니라면 더 좋다. 삼겹살도 좋고 꽃등심도 좋고, 치킨이나 양꼬치도 좋겠다. 다이어트 중이어서 나처럼 닭가슴살 앞으로 간다 해도 좋다. 든든히 먹고 힘내다 보면 또 좋은 날이 올 테니, 오늘의 우울함에 무너지지 말자. 오늘은 다행히, 날씨가 참 좋다.

 

 

 

 

 

먹고사는 일에 진심인 12명의 작가 김겨울, 김현민, 김혼비, 디에이트의 에디터들, 박서련, 박정민, 손현, 요조, 김진아, 천선란, 최민석, 핫펠트가 쓴 푸드 에세이로 작가 각자의 음식에 대한 사연이나 생각들을 풀어놓은 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3대 욕구(수면욕, 식욕, 성욕) 중 하나인 식욕에 대해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봤다. 식탐이나 식욕이 없는 편인 나는 아침 늦잠이 더 소중해서 아침밥을 거르는 일이 다반수지만 배우 박정민의 아침밥에 대한 생각을 읽으면서 나 또한 수면욕으로 놓쳐버린 아침밥을 아쉬워하며 앞으로는 다양한 종류의 아침밥을 챙겨 먹어봐야지 다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의 행복한 기분과 기억을 평생 만들면서 살고 싶다.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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