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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힘

긴긴밤/ 루리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by 롱이 202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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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루리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안산시 도서관 추천도서 루리 작가의 '긴긴밤'

최은영 '밝은 밤'도 추천도서에서 보고

빌려 읽었던건데 너무 좋았어서

두번째로 '긴긴밤'을 빌려왔다.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인데,

공교롭게 오늘이 어린이날이네.


긴긴밤은 코뿔소 '노든'과 펭귄 '치쿠' 그리고

이름 없는 아기 펭귄이 주인공이다.

 

 


<코끼리 고아원>

코뿔소 노든의 말년은 극진한 대우를 받는 왕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건 사람들 생각이고,
노든 자신은 한시도 쉬지 않고 붙어 있는 인간들과
그의 몸을 찔러 대는 바늘들,
그리고 그렇게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노든을 보러 왔다.
그들은 노든을 졸졸 쫓아다니며 노든이 언제 무엇을 먹는지 확인했고,
노든의 기분이 어때 보이는지 살피고,
노든이 기운이 없을 때에는 다시 기운이 나도록 약을 주었다.

 

 

 

무리가 따르던 할머니 코끼리는 이렇게 말했다.

"눈이 멀어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절뚝거리며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귀 한쪽이 잘린 채 이곳으로 오는 애도 있어.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 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고아원에 있는 코끼리 하나하나가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며 노든에게 행복을 빌어 주었다.

 

 

나는 언젠가 노든에게, 그때 고아원을 나오기로 한 선택을

후회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나도 예전 일들을 수없이 돌이켜 보고는 해.

그러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오르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것들도 있어.

그때 바깥 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야."



 

 

<뿔 없는 코뿔소>

노든은 아내와 딸에 대해서는 항상 말을 아꼈다.
아내와 딸은 노든의 삶에서 가장 반짝이는 것이었고,
그 눈부신 반짝임에 대해
노든은 차마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다.

 

 

 

앙가부는 파라다이스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자기와 똑같이 생긴 노든을 보고 뛸 듯이 기뻐했다.

 

"기분 좋은 얘기를 하다가 잠들면,
무서운 꿈을 꾸지 않아. 정말이야.
못 믿겠으면 시험 삼아 오늘 나한테 바깥세상 얘기나 들려줘 봐.
이봐, 나는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가 본 적이 없어.
같은 코뿔소끼리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고 얘기 좀 들려줘."



 

<파라다이스>

어쨌든 살아 있는 누군가를 만나서 노든은 반가웠다.
노든과 새와 알은 그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노든은 악몽을 꿀까 봐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날은,
밤이 더 길어진다고 말하곤 했다.
이후로도 그들에게는 긴긴밤이 계속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치쿠는 '우리'라는 말을 많이 썼다.
노든은 알에 대해 딱히 별 관심은 없었지만
'우리'라고 불리는 것이 어쩐지 기분 좋았다.

 

 

 

 

<망고 열매 색 하늘>

그리하여 나의 가장 첫 번째 기억은
새까만 밤하늘과 빛나는 별들과,
별들만큼이나 반짝이던 코가 뭉뚝한 코뿔소의 눈이었다.

 


노든은 주로 치쿠와 웜보의 얘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이야기 끝에서는 늘 너는 바다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걱정 마세요. 혼자서도 잘 갈 수 있어요."
나는 그때, 헤어짐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단지 바다에 도착하는 상상으로 들떠 있었다.
그래서 한껏 거들먹거리면서 자신 있게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노든은 진심으로 대견스러워했다.
"치쿠와 웜보가 자랑스러워할 거야."


나는 물속에서 느낀 것을 노든에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그리고 노든과 내가 다르다는 것이 너무 서운했다.
"그치만 나한테는 노든밖에 없단 말이에요."
"나도 그래."
그때 노든의 대답이 얼마나 기적적인 것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코뿔소의 바다>

 

"저기 지평선이 보여?

초록색으로 일렁거리는. 여기는 내 바다야."

"그러면 나도 여기에 있을래요."

"너는 펭귄이잖아. 펭귄은 바다를 찾아가야 돼."

"그럼 나 그냥 코뿔소로 살게요.

노든이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니까

내가 같이 흰바위코뿔소가 되어 주면 되잖아요."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나를 혼자 보내지 말아요."

"이리 와. 안아 줄게. 그리고 이야기를 해 줄게.

오늘 밤 내내 말이야. 오늘 밤은 길거든.

네 아빠들의 이야기를 해 줄게.

너는 파란 지평선을 찾아서, 바다를 찾아서,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 이야기를 전해 줘."

 

 

나는 절벽 위에서 한참 동안 파란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바다는 너무나 거대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작았다.

바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지만

우리는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의 심정을,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나간 노든의 아내 마음을,

아직 죽지 않은 연인을 뒤로하고 알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던 치쿠의 심정을,

그리고 치쿠와 눈을 마주쳤던 윔보의 마음을,

혼자 탈출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던 앙가부의 마음을,

코끼리들과 작별을 결심하던 노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긴긴밤' 속 주인공들은 우리의 삶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내 삶은 내 것이지만,

또 나만의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안감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송수연(아동문학평론가) 심사평-

 

 

 

누구나 힘든 시기인 각자의 '긴긴밤'이 있다.

그 긴긴밤에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를 다독이며, 힘든 시간을 견디고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가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

복받치는 감정 때문에

책을 읽다가도 여러 번 덮었던 건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이후로 오랜만이다.

어린이문학상 대상작인만큼 읽기도 편안하고

이렇게 슬프고 감동적인데 아름다울 수 있는 건가 싶었다.

심사평까지 완벽했던 '긴긴밤'

어린이와 어른들을 위한 도서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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